back to the very beginning of painting. 유년 시절, 안제름은 봄의 푸른 정원을 거닐곤 했다. 그의 눈에는 붓꽃이
back to the very beginning of painting. 유년 시절, 안제름은 봄의 푸른 정원을 거닐곤 했다. 그의 눈에는 붓꽃이 제일 예뻐 보였다. 그는 자신의 뺨을 선명한 푸른 잎사귀에 대보고, 손가락으로 뾰족한 꽃봉오리를 살짝 눌러보았다. 그리고 꽃의 향기를 음미하고선 오랫동안 그 속을 경이롭게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연한 푸른색을 띤 화반으로부터 손가락 같은 노란 행렬이 솟아나 있었다. 그 사이로 가느다란 통로가 저 멀리 아래쪽의 아늑하고 푸른 꽃받침과 꽃의 비밀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그것이 매우 사랑스러운 듯 오랫동안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연한 노랏빛의 마디들은 마치 궁궐 정원의 황금빛 울타리처럼 서있고, 또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의 나무들 사이로 겹쳐진 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는 맑은 유리처럼 연하고 생기 있는 그물맥을 통과하는 은밀한 길이 내면으로 통하고 있다. 웅장한 아치형으로 끝없이 둥글게 펼쳐진 황금빛 나무 사이의 오솔길 뒤쪽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심연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길 위에 보라색의 아치가 당당하게 휘어져 놓여 있고, 신비롭게 조용히 기다리는 듯한 놀라움 위로 얇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안제름은 꽃의 입술 (푸른 꽃받침 위로 노랗고 화려하게 자란 꽃에는 그들의 심장과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과 유리처럼 투명한 잎사귀의 그물맥으로 그들의 호흡과 꿈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활짝 핀 꽃과 함께 아직 피어나지 않은 작은 봉오리들이 있었는데, 그 봉오리들은 단단하고 끈끈한 줄기와 푸른 갈색의 껍질로 된 작은 꽃받침 위에 놓여 있었다. 어린 꽃들은 줄기로부터 조용하고 힘차게 솟아나 연한 초록과 엷은 자주색으로 빽빽이 휘감겨 있었다. 그 위로는 팽팽하고 부드럽게 감겨졌으며 연한 끝을 가진 어린 진보랏빛 꽃이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단단하게 말린 어린 꽃잎에서 맥상의 무늬와 몇백 가지의 징후를 볼 수 있었다. 안제름이 집과 잠과 꿈, 그리고 낯선 세계에서 돌아오는 아침이면 화원은 언제나 새롭고 아늑한 모습을 하고서 그를 기다렸다. 어제 아침 푸른 껍질로 단단하게 덮여 있던 연두색의 꽃봉오리가, 오늘 아침 공기처럼 연하고 푸른 꽃받침에 마치 혀나 입술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러면서 꽃은 오랫동안 꿈꾸던 모습을 참되게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꽃은 그의 껍질과 조용히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미 연한 노란색의 잎사귀와 투명하게 그물맥이 진 길이 멀리 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영혼의 낭떠러지로 떨어졌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한낮 또는 저녁이 되면 그 꽃들은 활짝 피어서 황금빛 꿈의 초원 위에 푸른 비단 천막을 둥그스름하게 짓고, 그들의 첫 꿈과 사념, 그리고 경이로운 노랫소리가 깊은 심연에서 조용히 흘러나와 숨 쉴 것이다. 한낮이 되면 온통 푸른 풍령초가 잔디 속에 있을 것이다. 새로운 속삭임과 향기가 정원에서 갑작스레 퍼져 나왔다. 태양은 붉게 황금빛으로 매달려 있고, 슈베르트 릴리꽃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황금빛으로 울타리 진 좁은 길은 연한 내음을 풍기는 은밀한 속으로 나 있지 않았으며 릴리꽃들은 가버렸다. 딱딱한 잎사귀들이 날카롭고 냉담하게, 낯설게 있을 뿐이었다.- 헤르만 헤세, 〈붓꽃 사랑〉 中. 풀이 나고 자라는 푸른 들판 속에 어리고 붉은 벌레가 숨어 있다. 개암나무 가지의 검은 구멍 속으로 끊이지 않는 노래를 들이부었다. 말할 수 없는 말로 부를 수 없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지평선은 거울의 저쪽에 있었다. 태양의 반사경을 머리 위에 두었다. 뜨거움이 심장까지 곧장 내려왔다. 울음이 오면 꽃잎도 따라 왔다. 모래와도 같은 기억이 흩어졌다. 푸른 들판 너머에는 푸른 물이 있었다. 푸른 물이 있다라고 쓰면 푸른 물이 눈앞에 펼쳐질 것처럼. 푸른 물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구름이 있었다. 간신히 말할 수 밖에 없는 한 숨결이 있었다. 교회 종탑 너머로 한 줄기 빛이 날아와 아프게 나를 찔렀다. 눈은 부시고 빛은 어둠이고 나는 잠깐 죽었다. 다시 살아나면 그 곁에 푸른 들판이 있었다. 푸른 들판 너머로 다시 푸른 물이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얼굴을 씻었다. 거울의 저쪽은 거울의 이쪽과는 무관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울의 이쪽은 거울의 저쪽과는 무관하게 열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 안과 밖이 생겨나고, 안과 밖과는 무관하게 자꾸만 열리는 것은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어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어제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떠난 사람 곁으로 떠나려는 물결이 있었다. 푸른 물을 바라보며 자꾸만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너무 울어 남아 있지 않은 눈물로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풀어질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잊지 못하는 빛이 있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오래오래 기다리기로 하고.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잠들기 직전에는 죽은 사람이 쓴 책을 읽었다. 대화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내내 이어졌다. 푸른 물 아래에는 여전히 가슴을 두드리는 구름이 있었다. 춥고 무겁게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푸른 물이다〉 中. -- source link